지나갔지만 손가락질.


적어둬야 하는 것들



환도열차

나는 여기가 아직 불편해.
우리는 여기가 아직도 불편하다. 여기는 나의 집이 아닌가. Mi Casa Es Su Casa
도무지 발이 뻗어지지 않는 현실. 발 뻗고 잠들기엔 너무나 불안한 나의 땅.  

누가 언 강 위에서 춤을 춰요!
당신의 구경은, 하나도 재미있지 않다. 보는 사람도 발을 동동 굴러주길 차라리 바란다.
가슴을 치게 아리고 답답한 나의 세상이 발밑으로 꺼져가는 것은 우습지 않다.

지순씨, 다시 잠들어요. 이 꿈의 끝은 비극이었으니 다시 새로운 꿈을 꾸세요.
뜨겁게 일렁이는 화를 물 아래로 침잠시킨 것처럼 차고도 부글거리는 대본이었다.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정민배우 정말 너무 예쁘다. 그린 것 같은 눈매가 곤란한 감정으로 일그러질 때 차마 마주하지 못할 정도로 저릿했다. 이제야 처음 보는게 미안할 정도였던 정민배우 말고도 여배우들이 참 빛나는 공연이었다. 그러면 나는 만족하는 경향이 좀 있다..<
++윤상화 배우의 감성은 정신을 못 차리게 갑자기 훅 들어온다. 웃으면서 지날 수 있는 회상이였는데도 그 말 몇 마디에 눈물이 날 것 같더라.  
+++자유소극장 리프트 자랑 이번에도 잘 보았구요. 좋은 활용이었던 것 같다.



뮤지컬 바람직한 청소년 재연

극장이 갑자기 넓어진 것은 그냥 아쉬울뿐.. 다음엔 꼭 이거보단 아늑하게하자. 넓고도 먼 건 영 안어울리더라. 그와중에 옥상 가는데 도리어 내려오는 건 놀라운 선택이었다.. 연출님 과감함이 오져서..깜놀..ft현신 
짧은 기간인만큼 몰입해있는 배우들도 더 좋았고. 새로 합류한 배우들도 좋더라. 두훈, 정원 지훈은 뭐 넘치는 캐스팅이라 그저 감사히 보았고요. 게다가 이레는 멜로 케미왕이니까..! 아 용학배우 뮤지컬 데뷔 축하하고요(?)
무엇보다 양경원 배우.. 하 진짜 첫공 보다가 소리지를 뻔했다. 미쳤나봐 너무 좋아!! 체육 나올때마다 진짜 정신못차리고 봤다.
무심하고 딱딱하다가도 어르고 달래는 말투, 은근히 압박하는 제스처 모든게 다 좋았다. 어디서 저렇게 찰진대사처리지.. 이레오빠랑 현신이 볼 정신 앗아가기 있냐.. 물론 교복핏과 하는짓 진짜 일진..< 인 종철이도 굿굿.  
교은이 캐릭터에 대한 배려가 좀 더 없어진건 살짝 아쉽고. 마치 대부분의 뮤지컬이 그렇듯이 여자캐릭터까지 배려할 정신이 없어보인달까. 게다가 다희배우의 노래를 뽑아먹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기분이라 슬펐고요.. 어려운 파트 셔틀로 아주 자알 쓴다  
류경환 배우도 좋더라. 다만 '구도균역할'을 함께 맡는다는 것은.. 너무나 가엾은 것이다. 그분의 개성은 마치 토네이도 같아서 무대와 객석을 와락 쓸고 지나가버린다. 여전히 고재범 매니아 두분 아주 웃음 난리시구요. 효도신발은 솔직히 참기 힘들다 그치..  

곡은 라이브가 되자 훨씬 좋아졌다. 극장 음향이 충격적으로 안 좋아서 그 보람이 적어 슬펐지만.. 할매라서 카톡감옥 이해하는데 검색이 필요했는데 하다못해 '이 방 뭐야' 하는 봉수 대사라도 잘 들리게 하고 넘어갔으면 좋을텐데, 할 만큼 음향이 너무 안좋았다. 안들려서 가사의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애들이 이거 뭐 소리를 못지르겠네요.   
'나 그사람 사랑한다'를 절절히 외치는 순간 좀 아 무리수인데요.. 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 김에 현신이 이야기를 보다 뮤지컬스럽게 풀어낼 기회를 얻은 것 같긴 했다. 근데 어쩌다 본 모배우가 밥상을 탁 엎어버릴때 너무나 무서웠다..캐릭터 살릴 밥상을 차려줘도 왜 먹지를 못하니.. 뭐 그래서 여전히 내게 현신이는 이나현신. 이제 정말 벗어날 수 없겠더라(...) 뮤지컬은 이제 한작품 했는데 지인짜 내타입 배우. 연구한 티가 역력한 디테일인데도 과하지 않은 선을 지킬 줄 아는건 타고난 센스라고 봐야 하려나. 캐릭터 표현이 날카로우면서도 참 감성적이다. 뭐 여전히 이레와 너무 빨리 친해지는 감은 있는데 현신이가 워낙 순진해서라 치고..<
현신의 의외의 해맑음.. 이 종종 빛나는 장면이 있는데, '불륜? 와 선생이란 것들이 이럴 수 있냐?'하는 대사에서랄까. 얘는 대체 얼마나 순진했길래 아직도 어른들한테 무슨 기대라는걸 하고 있어. 여러모로 먼저 어른이 된 이레보다 참 아이였다.

우리가 어른이 될 때쯤엔, 우리나라도 분명 바뀔거야. 그 대사를 들을때마다 희한할 정도로 가슴이 내려앉는다.
나는 바뀌지 않는 세상을 사는 한심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어.  
죄책감에 눌린 꿈에서 깨어나서, 여전히 자신이 없어 혼란스러워서 허공을 보는 아이들.
아이들이 그렇게 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삼연

초연부터 좋아하던 공연은 분명했는데, 삼연에 와서야 비로소 이 대본이 어떤 구성을 지니고 있는지가 가시적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걸 와닿게 설명해준 것이 초재삼연 내내 앨빈이었던 석준배우였다. 이를테면, 왜 앨빈이 엄마 가운을 잃어버린 날 이야기가 끝나고 톰에게 '우리 다시 한번 해볼까?'하고 일주일 전 그날 이야기를 꺼내는지. 그러다 그 이야기를 보고싶지 않아 고개를 돌리는 톰이 왜 '한번 나타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아. 긴 세월을 넘어 영원토록 남아있어'의 순간-톰소여 독후감-을 떠올리는지. 그리고 앨빈이 그냥 네가 '아는 걸 써 톰'이라고, 6학년 때 너에게 책을 선물하던 때부터 항상 말해왔다는 걸 다시금 답해주는지. 그런 흐름을 고스란히 들려 주는 거였다.

사실은 너무 톰을 잘 이해하고 있는 앨빈이라 개인적으론 이전의 캐릭터가 더 좋긴 했다. 이렇게까지 톰의 기억 구석구석을 다 알고 있을 필요는 없어.. 약간 무서울정도로, 빨리 톰이 자신에 대한 응어리를 놓고 다시금 작가로서 살아가길 바라는 느낌이 강해서 오히려 앨빈에게 이입하기가 어려웠다. 장면마다 뭐랄까 이제 이 대본을 다 뗀 사람을 보는 느낌이랄까.. 저 이분 책거리 해줘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 수업인거같아요. 그런 석준앨빈과, 새로운 흐름의 필석톰 덕분에 처음 느끼는 순간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래서 백암이라는 후진 극장에서도 나름 괜찮은 감상을 주었던 겨울의 스옵마.

그때도 톰은 자기만 생각하느라 앨빈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인 앨빈의 송덕문을 쓰는 도중에야, 그가 빌려 맨 넥타이를 매고,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가 이야기를 아주 잘 했다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이야기에 이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앨빈이 곧 내가 옛날부터 알던 앨빈이었고, 그가 긴 시간을 통해 키워왔던 그의 이야기들이라는 것을, 앨빈의 송덕문을 쓰는 그때서야 톰은 깨닫는다.

작가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주변의 사람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내 기억 속에서 또렷해지는 앨빈이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를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서야 톰은 알게 된다. 내 삶의 그런 존재를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 지나치게 오랜 시간동안 그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다. 이제 내 이야기, 너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안녕 앨빈.



빛의 제국 

소설은 오래 전에 읽긴 했지만, 심상이 강조된다기보다는 호흡이 가쁘면서도 냉정한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흠.
상상했던 냉정함과 컬러감은 비슷했는데 이야기가 뒤로 미뤄지고 정적이면서 불안한 느낌만이 남았다. 남이 본 시선이란 이런 건가. 물론 세계 유일 분단국가로 꽤 오래 남아 있는 우리의 실생활은 남들이 보기엔 기묘하게 차갑고 무심할 것 같다. 당장 내 옆의 누가 나 사실 간첩이었어, 고백한대도 우리는 평소처럼 출근하고 점심 먹고 SNS를 할 것이다. 그가 돌아가야 한다면 좀 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겠지. 그래봐야 뭐 인간관계나 부동산, 보험 이야기겠지만. 아마 그런 문제들 다음에 안보 이야기를 곁들일 것이다. 
흥미진진했던 책에 비해 보기 힘든 스타일의 연극이었지만 아주 별로, 는 아니었다. 테이블 연출은 멋있었다.  

+문소리 배우를 무대에서 본 건 처음인데, 목소리가 약하고 생각보다 체구가 작았음에도 분명 아우라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야기 속 인물로 관객들을 훅 끌어가는 힘이 있는데 모든 면에서 자신감이 부족한 기분이 들어 의외였다. 오월가 부를때의 감성은 정말 좋더라.          
++현준배우는 걷는 게 정말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 입을 떼는 순간 텍스트가 촤르륵 올라가는 듯한 목소리도 좋지만 무대를 걷는 게 새삼 너무 좋았다. 피로감, 을 그리기엔 조금 뜨거운 감이 있었지만 다른 배우로 상상되지 않는 에너지로 김기영을 그려냈다. 전반적으로 배우들이 좋긴 했지 뭐. 동탁배우 목소리도 너무 좋아서 새삼 소름이 오소소. 여전히 잘생긴 김한 배우, 마치 무대 오브제처럼 느껴진 정훈 배우도 오랜만.     



윤동주 달을 쏘다 

전반적으로 예술단과 작가와 연출이 모두 다른 지향을 지니기에 문제가 많다, 라고 느꼈다. 예술단의 가무극으로 표현하기엔 언어의 깊이가 깊고, 평면적인 연출이 감당하기엔 소재와 드라마가 세다. 반대로 예술단의 풍부함을 뽐낼 기회가 줄어들기도 했고..서로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조합인 것 같다. 나로선 대본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작품인데 그걸 그냥 툭 던져놓는 기분이라 못내 불만. 예산은 됐고 서재형을 주실래요? 이 대본이면 규모 없어도 괜찮을텐데요.

한작가님의 숨결, 이랄까 익숙한 감성을 느낀 부분은 대사에서 많이 있었지만, 일제를 묘사하면서도 묘하게 처연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윤동주가 보고 느꼈던 일본에도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껏 새로움이라는 치장으로 들떠 있는 거리에서, 식민지의 시인은 동시대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군국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충성을 외쳐댄 각양각색의 사람들. 가미가제로 자기 목숨을 버리도록 꼬드겼던 그들의, 벚꽃잎처럼 흩어지자는 아름답고 비열한 말. 내가 여기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있다고, 누구 하나 듣지 못할새라 목놓아 외치는 친일인사의 연설. 시간이 지나 지켜보는 우리와는 분명 다른, 절실하고 처연한 심경이었을 새파란 시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동정과 경멸, 슬픔과 분노를 담아. 그리고 마침내 시절이 나를 할퀴었을 때의 나약하고 어려운 마음을 담아 그가 썼던 산문과 시에서 뽑아낸 장면들이었다. 타국의 거리, 타인의 시선. 미친 자들의 몸부림과, 나는 어떻게 이 시절을 헤치고 버틸 것인가에 대해서. 보다 세련되고 감성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  

윤동주의 글과 손잡은 대본 얘길 좀 더 하자면 경성의 거리를 묘사하는 장면도 정말 좋았다. 식민지의 중심부에 선 청년들의 시선. 그 화려함과 허무함, 낯선 풍경이 점차 눈에 익을수록 알 수 있는 진짜 삶의 모습들. 마냥 따뜻하게 바라보기엔 불안함 속에 살아가는 식민지 국민들의 진짜 삶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떻게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처받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려는 사람들 속에서, 세상이 던진 거친 농담을 어떻게든 웃어넘기려던 청년들의 불안한 나날. 끝내 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않기를 바랄 만큼 반짝거린다. 기본적으로 항상 맑은, 그리고 친구임에 분명한 서예단 3인방의 조합도 아주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 박영수 배우의 동주는 장면이 지나고도 떨쳐지지 않을 만큼 깊다. 아직은 어리기에 호기심과 희망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어느 왁자지껄함 속에서도 혼자 가라앉아 있는, 누구와 있더라도 혼자만의 언어를 품은 눈을 보자니 어떤 방해도 신경쓰이지 않고 몰입되었다.  

'별헤는밤'과 '달을 쏘다'를 잇는 장면은 굉장하다. 청년 윤동주를 담아내는 가장 결정적인 한방이랄까. 맑고도 우울한 느낌을 축적해온 시간을 지나, 마침내 처절한 에너지를 함께 터뜨리는 영수배우의 동주가 더해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을 준다. 지금의 우리가 그의 부끄러움과 망설임을 결코 멀게 느끼지 않고, 언어로 남았기에 당시의 마음을 아직까지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안심이었다. 혹은 그렇지 못하고 사라졌던 많은 사람들에게 대해서까지, 우리는 이따금 생각할 수 있다. 비로소, 당신의 고통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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