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손짓.



산책을 할 때면 종종 학교를 가는 일이 있다.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났기에 이제는 '어쩐 실질적인 느낌'을 가질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러니까 거기는 그냥 '학교'일 뿐이고, 내가 학생일 때 느끼던 몇학년 몇반, 교무실, 화장실, 상담실, 과학실, 운동장 각각이 나에게 지니고 있었던 실질적인 의미, 가 없는 그냥 단순히 학생들이 하루 몇시간을 보내고 교사들이 그 치다꺼리를 하며 안정적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알려진 학교, 그리고 강아지 산책을 하기에 좋은 운동장과 뒷산을 가진 어떤 건물이 된다.  

의미로부터 빠져나와서 이 건물을 보면, 항상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라는 곳이 얼마나 죽기 쉬운 장소인지를 생각한다. 4층 이상 건물의 옥상, 각 반마다 창문이 있고 끝은 어디에나 난간. 쓰레기장 위쪽의 구석진 길은 햇빛 한줌 들지 않고. 또 여기저기 어쩌다 생겨난 샛길. 뒷산의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들. 
어릴때 한창 학원물이라는 장르는 유행했고, 옥상에서의 자살 혹은 자살소동이 심심찮게, 때로는 낭만화되어 등장했었다. 그게 그냥 10대에게 어울리는 이야기여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정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공간이구나. 학교 안 여러군데를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꽤나 기적이구나. 

많은 것들을 시시하게 느끼게 된 지금의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릴 때는 정말 너무나 죽고 싶어 했었다. 그것은 냉철하게 생각하면 우울도 아니고 치기도 아니고 어떤 사정도 아니고 그냥 습관이었다. 습관적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아마도 그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요받던 시기였기에 당연히 포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서 멈추고 싶어요. 잔잔하게 그런 마음을 가진 채로 살아갔었다. 그러면서도 하루하루의 사건들이 무척 큰, 크다고만 표현하기에는 어마어마한, 엄청난 풍선들 같았다. 풍선이 터질때마다 삶이 터질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냥 풍선이었다. 10대. 옥상과 난간의 시간이다. 매일마다 거기를 아슬아슬 걷는 것이 재미있고 또 고통스러웠다. 어른이 되면 어련히 안심하고 땅에만 발디딜 것을 내심 알았을지 모른다. 


고등학교 때, 한 학년 위의 학생이 동네의 유명한 학원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었었다. 운구차가 우리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고, 운동장을 어떤 여자애의 관이 돌고 떠나갔다는 것을 모두가 알던 날의 웅성거림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다. 입시 스트레스, 뭐 대충 그런 타이틀로 지나갔던 것 같고 너무나 흔한 이야기여서 특별하지가 않았다. 십대 아이가 자기 숨을 끊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그렇게 흐릿한 기억에만 남았다. 어려서 그런지 커튼을 열지 않았던 그 시간에 나는 선배를 추모했었다. 낭만적인 반응뿐이었다. 어린 시절이라는 것은 아마 그런 자연스러운 반응들에서부터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죽기 쉬운 삶을 빠져나와, 아직까지 잘 살아남아 있다. 
이것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늘상 올려다보기만 했던 옥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어린 시절이 서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보낸 시간이다. 


 



(제목없음) 손짓.




오늘도 육체적으로 약한 존재가 죽는다 

작은 동물이 얻어맞아 눈알이 터지고 내장이 끊어져 죽고 

작은 동물이 보호받는 줄 알고 입맞추던 사람이 어느 모르는 길거리에 두고 도망치는 일을 당하고

평생이 되더라도 그를 기다릴 생각을 하고

차에 치여 죽고




생식기가 달렸다는 이유로 강간을 당하고 

보복으로 악의에 가득 차 다른 사람의 삶을 흠집내고 

보복조차 아닌 정치적 아욕으로 더 심하게 험담하고 

그걸 보고 조롱하며 웃고 또 분노하고 

분노하고

세상 모든 나를 둘러싼 것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이 자기를 한번 쳐다본 사람을 칼로 찌르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일을 하느라 그 사람의 형량을 줄이려 산더미같은 서류를 읽고 분석하고

울면서 악마를 변호할 논리를 짜고 

술을 먹고 

잊어버린 줄 알았던 것들이 떠올라 울며 거리를 떠돌고 

만취해 마음에 들지 않던 사람의 집에 라이터를 던지고 


수능을 망치고 재수학원에 등록할 생각을 하던 애는 건물 위로 달려가 뛰어내리고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여자애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우리는 살아서, 내일을 준비하고 

불행이  나를 덮쳐올 리 없다는 듯이 

아무 대비가 없고 




지구가 멸망할 리 없다는 듯이 소비를 하고 

하지만 지구가 끊어져가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고 

알면서 쓰고 버리고 흘려보내고 사고 버리고 짊어지고 

발디딜 곳 없는 동물들이 곧 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늘 또 남의 가죽을 벗겨 만든 신발을 사고

버리고 

남의 것을 탐내고 

부러움 끝에 분노하고 

분노하고 


분노를 옮기고 싶어 안달이 나고 

나만큼 기분나쁘지 않은 모든 것들을 기분나쁘게 할 궁리를 어떻게든 해내고 

그걸 다같이 보자고 

보고

허황되게 웃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화를 내고 





오늘도 어디선가 어린 개체가 다치고 죽고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살아남고 

살아남은 놈들이 

세상을 빚어가고 

세상은 그렇게 물레에서 내려오지 못하다가 

결국 우그러져 

언젠가는 끊어질 테고 


그 무너짐이 반드시 올 것인데도 

아주 멀었거나 혹은 무척 가까울 것인데도 

내일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고 

일상이다. 




매일의 항상이다. 

항상의 해를 기다릴 기대가 들지 않게 되었다. 

오늘을 넘겨 살아가는 나는 더러운 조각이 되었다. 

때빼고 광내도 

더러운 것의 조각일 수밖에 없다. 

오늘도 

아마도 항상

색 있는 것들은 사라지고 

맞고 틀린 것들만 남을 때까지. 





 


뮤지컬 빈센트반고흐, 단상 손가락질.



한때 자기 사촌을 사랑했다가,
임신한 거리의 여자와 결혼하려 했다

아버지는 집안의 수치라며 비난하고 고흐를 버린다 
고흐는 결국 그 여자, 시엔을 버린다 
그렇게 한 자신을 보며 절망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자신을 개라 칭하며 인생을 비관하고 울부짖는다 

(a)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흐는 밀밭의 아버지를 그리고 싶었다며 슬퍼한다 테오는 위로한다

그림에 몰두한다. 그림이 서른 두 살 고흐 인생의 탈출구라 여겼다. 
물론 경제적 뒷받침은 테오가 했다 

테오는 종종 부담스러웠지만 형의 그림을 응원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고흐가 가장 고흐답다고 이야기한다

그림인생이 잘 풀리지 않자 고흐는 술에 의지하고, 당연히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악순환.
다른 화가들과 교류하고 싶어했지만(특히 고갱),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며 관계는 틀어졌다

고흐는 미쳐버린다. 자기 귀를 자르기까지 하지만 이내 다시 그림을 그린다
내내 가난하고 불안했고 외로웠고, 종종 행복했다. 
그리고 서른일곱 살 어느날 자살한다 

(b) 그는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을 보며 '완벽하다'고 마침내 외친다 



그러니까, 뮤지컬의 주 내용은 고흐에 대해 조금 알아본다면 찾을 수 있는 그의 인생 에피소드 몇개를 갖다 붙인 내용이다. 
거기에 고흐와, 형을 아꼈고 유고전을 해주고 싶었던 테오의 마음은 이러하지 않았을까, 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지극히 애정어린 시각이며 따라서 고흐의 생애와 그림에 따르는 이러저러한, 평가와 곁가지 정보들은 당연히 제거한 채
그림에 진심을 담고자 했던 화가라는 컨셉으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니까 나의 느낌은, 이 주제는 갑자기 평이하고 다정하다.


요약해서 보았지만 고흐의 생이 평이하고 다정한가? 난 잘 모르겠다. 울부짖고 가슴을 치는 광경을 얼마나 많이 본 지 모른다. 그는 물론 나도 눈쌀을 찌푸린 적이 여러번 있었고. 무대화의 흔한 주제인 '예술가 다루기'가 나에게 좀처럼 잘 다가오지 않았던 이유를 이번에 어렴풋이 찾아냈다. 그러니까, 내가 만약 미술을 했다면 나는 고흐의 그림에서부터 그를 찾았을 것이다. 고흐가 아니라 이미 넘쳐나는 작곡가 스토리를 볼 때도, 나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음악에서부터 그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예술가의 작품에 대해, 그리고 그가 어떤 예술가인지에 대해 별다른 레퍼런스가 없는 관객이기 때문에, 단지 극중 화가나 작곡가 본인의 입으로 자기 넋두리 하는(그러니까 작가가 생각하는 그 인물에 대한 필터를 거친) 것만을 봐야 한다. 그것도 우연인지 모르게 하나같이 비슷한 넋두리들을. 
단순화 및 추상화한 문장으로 간추리자면 그것은 '예술은 하늘에 있고 나는 땅에 있어서 힘들다' 이다. 천재성(혹은 지독한 노력으로 가까워진 천재성)과 현실의 충돌이며, 오롯이 하늘의 것만을 누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푸념이며, 이러한 이유로, 높은 확률로 그 자신과, 그와 스치는 사람들을 불행하거나 슬프게 만든다. 

결국 나의 거리감은, 그 예술가의 '예술가임'은 결코 그 사람의 생애나 생애를 본뜬 주변인의 외침이나 그마저도 자기 식대로 해석한 창작진의 자기 주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탄생시킨 작품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에 있다. 내가 보는 것은 모짜르트의 악보가 아니라 살리에르가 째려보고 있는 가발 쓴 남자이며, 고흐의 그림이 아니라 무대/영상 디자이너가 꾸며준 무대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은 결국 그 예술가도, 그의 작품도 아니다. 주석에 대한 주석이고 썰들에 대한 비평일 뿐이다.  


내 생각에, 지금의 예술가들은 고흐에게 공감할 수는 있지만 끝내 이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지금의 예술은 그런 '헝그리정신'에서 나오지 않는다. 변화가 빠르고 '힙'하기만 하면 그바닥 유서깊은 으르신들을 만족시킬 순 없더라도 어쨌거나 세상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시대이므로, 고흐처럼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타다. 우리의 예술은 이제 뻐기고 '널리' 외쳐대는 것에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 이 작품의 창작진만 해도, 감히 이게 고흐야, 그리고 그 동생 테오야. 라고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많을수록 그들이 생각하는 고흐와 테오(더불어 고갱을 비롯한 주변인물들)에 대한 공감이 늘어날 것이다. 화가 고흐에 대한 팬심이 있다면 흐뭇할 일이다. 이제라도 그를 이해시킨 기분이 들 것이다. 단지 나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그의 그림 한 장, 그것보다 어떤 의미가 더 있는지 글쎄, 잘 모르겠다. 


당연히 나는 내 생각의 바운더리 안에서, '인간 고흐'를 이해할 수는 있다. 나는 그의 아버지도 형제도 아니고 스쳐간 연인도 아니며 교류한 동지도 아니고 화가도 아니기 때문이며, 그것은 이 극을 만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고흐가 사람이었으니 그림만 남긴 것은 아니고 삶의 흔적들, 살았던 집과 주고받은 금전과 대화와 그에 대한 증언들, 무엇보다 편지들, 가족과 주변인들의 기억들, 그런 것들을 많이 남겼을 것이다. 그의 그림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 그림의 에너지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그의 삶까지 궁금할 법도 하다. 그래서 남긴 것들을 추적하고 재구성하고 상상해본다. 상상에 영감이 더해져 또다른 나의 창작물이 나온다. 다른 사람들의 공감마저도, 얻고 싶어진다. 그 마음이 사실은 더 공감이 간다. 그런데 나라면, 이렇게 용감하게 무대에 올릴 수는 없을 것만 같다. 
이렇게 수많은 관객들에게 비운의 천재 고흐를 이해해 보면 어떻겠냐고, 단순하게 무대화한 작품을 올리다니. 
나는 그런 무모한 용기에 대해 이제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이 되어간다. 



*작품을 보다가 가장 ? 한 부분은 (a)의 연결 때문이다. 통상 주인공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좌절하고 절망한다면 그 이유와 결과를 전달하면서 어떻게 극복하는지까지를 보여주며, 그것이 이야기의 흐름이다. 우리가 지금 본 것은 고흐가 여자 문제로 아버지와 틀어졌고, 그에 따른 절망이 꽤 깊었으며, 힘들어하다, (결국 포기했고) 옷장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테오가 들어와 '형 이제 나와, 아버지 돌아가셨어'라고 했고 이것은 시간의 흐름을 생략한 것이다. 그리고 고흐는, 아버지를 그리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며 슬픔에 빠진다...? 

사람은 당연히, 그런 복합적 감정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대본은 (a)의 흐름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설명했나? 방금까지 분노로 이글대는 눈과 절망한 목소리로 울부짖던 주인공의 감정이 단숨에 애절한 그리움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 뭐라고 설명했나? 난 단지 한 문장만 떠올랐다. '죽으면, 좋은 얘기만 해주네' 대본이 한 것은 애석하게도, 죽음으로써 용서해버린 것이다. 물론 고흐가 아버지를 용서할 입장인지도 잘 모르겠다만, 방금까지 고흐 입장에서 그렇게 절망스런 난리를 쳐놓고 갑자기 입을 싹 씻어버린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당황스럽다. 심지어 아버지를 다시 만날 때 부끄럽지 않도록 그림에 몰두한다는 내용으로 넘어간다. 아.. 그래? 시엔에 대한 사랑과 자기 혐오는 그냥 아버지의 죽음으로 거기서 끝나버린 거야..? 

의문 속에 나와서 우선 프로그램북을 펼쳐 보았는데 시엔에 대한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나중에 조금 더 찾아보니 고흐가 사랑했으나 가족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했던 여자로, 모델이 되어 주었다고 되어 있다(고흐의 설명에서 보통은 다섯 명의 여자가 언급되는데, 하나같이 사연이 드라마틱하다) 뭐, 시엔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라지만, 극의 흐름을 생각할 때 나는 시엔이 결국 '임신한 창녀를 사랑하며, 그녀를 숭고하게 여기다 가족에게 버림받는' 고흐의 특이성을 설명하는 장치로만 지나갔다고 느낀다. 굳이 창녀임을 강조하면서, 넘버 두 곡을 소비하면서. 그리고 대략 그 즈음부터, 작품도 나도 주인공 고흐를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아한다고 느꼈다.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끝내주는 에피소드를 만들며 살았던 어떤 사람.  
 
 
** (b)는 내가 용감하다, 고 생각하게 한 결말이다. 그가 죽기 전에 그린 그림에 대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나온 것인가? 극에서 말한 것은 아마 '까마귀 나는 밀밭'인 것 같은데, 찾아보니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설이 있는, 작품이었다. 확인된 바 없으나 죽음을 내포했기에 자살에 대한 상징적 의미 정도는 된다는 작품이다. 뭐, 그런 학계의 논쟁까지 내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고. 
그가 이 작품을 '완벽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나는 최소한 그에 대한 고흐나 테오의 직접적 언급이 있었어야만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 후대의 평가에 기인했다면 좀 게으르고, 그저 고흐에 대한 팬심으로 '그가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고 비로소, 자기의 그림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 라는 바람이었다면 최악이다. 누구도 그렇게 단정지을 권리가 없다. 보면서 만약 이거 아니면, 고흐가 관뚜껑 박차고 일어날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누가 내 흑역사를 전시하면서 '그의 인생의 정점이다' 라고 말한다면 좋겠는가? 극단적 예지만 정말로 그럴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한장면 한장면 지나갈때마다 주인공이 점점 더 꼴보기 싫어질 때...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폐남주를 싫어하는 것과는 조금 결이 달랐지만 뭐랄까, 이렇게까지 살았던 이유를 내가 그의 작품에서 꼭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꼭 그래야 할 거야.. 싶은 막막한 기분 말이다. 결말에 이르러 결국 테오도 형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는 것을 보면서 아... 그렇게 시달려서 결국 병 얻어 죽었어.. 라고 내적 혀를 찼는데 조금 찾아보니 그가 정신적 불안감으로 아내와 아들(빈센트!)을 학대하기도 했다는 설이 있었다. 아, 미친 사람과 주변의 불행은 어디까지 가야 하는거야. 이런 피로감을 더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위대한 작품들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 누군가의 불행한 인생을 더 사랑함으로써, 실상은 위안을 받던 모든 어린 정신세계들과 이제는 그만 이별할 때가 된 것이다.
 

****아주 '뮤지컬스럽지는' 않지만, 넘버들이 좋았다. 사람에 대한 우글쭈글한 연대기보다, 그림에 대한 음악적 주석이라 느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고흐를 보기 위해 고흐가 사라져줬으면 하는, 신기한 무대화의 결과. 






야경 손짓.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한밤, 새벽에 가까운 한밤에도 깨어서, 
창문을 망창까지 벌컥 열어 놓고 창틀에서 차가운 밤을 내다보았다. 

여기 도시에 사는 나는, 언제나 불빛이 꺼지지 않는 야경을 보며 산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시간이어도 차 두세 대는 꼭 달리는, 어느 간판은 반드시 켜져 있는, 
그런 야경만을 보며 산다. 그래서 밤이지만 항상 혼자는 아니다. 
멀고 또 가까이, 누군가는 아직도 혹은 벌써 움직이고, 누군가는 쉰다고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나 말고 모든 이가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가만히 야경을 보고만 있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그러면 나는 이 세상의 잉여물처럼 느껴진다.
 
나는 내가 잉여물인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있든 없든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상태. 
그렇다면 나는 이제 진짜 재미있는 무언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도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잉여물일 때 세상은 어떻게 될까
반드시 필요한 쓸모가 있지 않음에도 부피를 차지하는 것들로 가득할 때.

꼭 필요한 무언가가 되고 싶었던 나를 잠시 접어놓고, 
추구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 벗어나서, 안간힘을 쓰던 뜨거운 낮에서 탈피해서. 
없어도 되는 순간 비로소 내가 세상에 대해 흥미로운 것을 할 수 있다고 느껴진다.
쓸모를 추구하지 않는 잉여물만큼 재미있는 것이 있을까.


밤의 한 구석에 나는 잉여물처럼 앉아 야경을 내다본다. 
반드시 밝아올 내일이 나에게는 없는 것처럼.
그러면 세상은 종종 재미있다. 
그런 야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R&J 재연 손가락질.



결국 사랑을 배우는 아이들의 이야기. 
이야기로 사랑을, 선택을, 의지를, 용기를 배운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이야기는 한때 시였고 시는 또 연극이었다.
연극하는 연극을 보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련하게 즐겁다.


왜 이 희곡이 남학교를 배경으로 시작했는지 잘 모르겠다-19년에 처음 본 나에게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세상을 뛰어넘는 것까지 남자아이들이어야 하나? 여자아이들이 로맨스를 읽는 것은 너무 진부해서일까. 금기를 뛰어넘으려는 여자들이 촛불을 켜고 춤추는 것은 마녀의 축제일뿐이라 그런 것일까. 나로서는 이것이야말로 오롯이 여자의 희곡이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오롯이 처음 본 것은 이해랑에서 별로 멀지 않은, 국립에서 올랐던 중국배경 각색본이었는데 그 역시 이에 비할 바 아닌 체력극이었으며 줄리엣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사랑에의 맹목을 지닌 채 내내 몸부림치는 여자아이였다. 천진한 사랑이 너무도 극단적이라 발코니를 뛰어다니는 것을 보자니 심장이 졸아들고, 마침내 칼을 쥐어 휘두르게 되었을 때 그 본성을 태워버릴 수 있었던 그런 불꽃같은 여자아이. 남자아이들끼리 희곡읽기를 진행하는 알제를 보면서도, 전반적으로 줄리엣의 캐릭터가 상당히 세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러고보니 셰선생님은 줄리엣을 상당히 상당한 아이로 쓰셨던거군요? 아니면 셰선생이 보기에 베로나 동네가 상당히 험악했다거나. 그럴 수 있지.

아무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사랑을 배우는 것이 '또' 남자아이들이라는 것이 그날따라 처음부터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다. 아, 이거 좀 너무하네. 한밤중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금지된 사랑이야기를 펼치는 어린 날들을 또 빼앗아가네. 장을 넘기며 읽을수록 이것은 여자의 목소리로 터져나와야 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어리석은 남자들의 치기가 거리에 피를 뿌리는 것을, 그 피를 덮는 한없이 어리고 순결한 어린아이들의 사랑을, 그 안에서 발견되는 고통과 분노, 좌절 그리고 극복을 배워야 하는 것은 분명 그 답답한 학교에 갇혀있던 여자아이들일 텐데. 아니 뭐 실은 그때 여자애들은 학교에 갇혀있지도 못했을지 모르겠지만. 
무대에서 남자 기숙학교의 이야기를 너무 자주 봐서 내가 지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언가 나는 또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특히나 극에서 '우리의' 줄리엣의 자리가 상당히 크고 강렬하기 때문에. 마침내 세상을 찢어버릴 듯한 사랑과 용기를 보여주는 그 소녀의 목소리가 돋보였기 때문인지도. 

단지 발구름과 결투씬의 파워가 조금 덜해서 아쉬우려나 정도의 염려 말고는, 정말로 이것은 여학생 4명의 무대가 되었으면 싶었다. 물론, 다들 최선을 다해 무대를 뛰고 이야기를 외쳤고 나도 좋았지만 알잖아.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래 양보해 왔잖아. 우리의 여름밤도 길고 뜨거웠단 말이야. 붉은 천으로 휘감는 맵 여왕의 먹잇감이라면 실은 여자의 마음 속이 더 어울릴 것이다. 소녀들에게 얼마나 많은 탈출이 필요했는지. 우리가 어떻게 망상으로 도망치며 살아남아 왔는지를, 이제는 남부럽지 않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장 먼저 사랑에 발길을 들인 아이는 그 고통에 몸부림치고 
가장 폭력을 두려워하던 아이가 가장 잔인하게 폭력을 닮아낸다. 

싸운다! 부터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어린 남자아이들이 점차 진짜 결투를 배운다. 너와 나 둘 중 하나의 목숨을 거두는, 죽음을 등뒤에 둔 채 벌이는 것이 곧 싸움이라는 것을 배운다. 폭력이 가져다주는 충격. 거리를 피로 물들이는 어리석음으로 아름다운 한 쌍의 어린 연인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음을 진짜로 체득한다. 지금의, 남자아이들의 알앤제이가 주는 가장 생생한 부분은 여기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아니면 된다고, 참고 지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던 그 잔학함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손을 잡아 주는 용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함께 위로하고 위로받을 때 비로소 자기 안에 용기가 있음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한 발짝 다시 뗄 수도 있는 것이라고. 결투와, 죽음과, 순간적인 복수와, 그에 대한 책임과. 그럼에도, 지켜야 하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그런 말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또한 배운다. 남의 마음을 할퀴고, 눈물을 쏟게 할 말을 기필코 내 입으로 뱉을 때가 찾아온다는 것을. 그 상처와 아픔의 가운데에서 닥쳐오는 운명에 맞설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희곡을 이어가고자 그리고 친구의 아픔을 위로하고자 했던 학생1의 떠밈으로 어쩔 수 없이 해내는 학생4의 힘겨운 대사에서부터, 다른 아이들까지 모두 함께 배울 수 있다. 그것을 이겨내고, 자기 말에서 나온 칼에 베인 아이의 얼굴을 마주할 때, 학생4는 이전의 자신에서부터 분명 한걸음 성장했을 것이다. 그렇게 역경의 대사를 내뱉고 다시금 위로를 배우고, 상처를 이겨낼 힘을 얻어내어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친구가 내민 손을 가장 먼저 붙잡아줄 수 있게 된 것을 본다. 


학생3은 제일 먼저 도망치고 상상의 종소리마저 무서워 떨던 아이였다. 특히 기둥배우일 때, 학생3은 어쩐지 결말을 아는 마음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는 힘을 종종 보여 준다. 시작부터 우리가 모두 들었듯이 이것은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이야기다. 
죽음도, 사랑도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처음에 비밀로 남겨둘 이야기를 펼치며 신나한다.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이야기, 가 무엇인지 깊숙히 알았더라면 과연, 선뜻 호기심과 흥분으로 하필 그 이야기를 집어들었을까. 그 나이대 가장 매력적으로, 동시에 내겐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단어, 죽음. 자유의 박탈이자 또 자유의 박탈로부터의 유일한 탈출이 될 수도 있는 것. 그리고 묘한 간질거림과 건방진 허세로만 느껴지던, 사랑. 실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마음을 쥐어짜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 전부를 부정하게 될 수도 있는 것. 
지금부터 무대위에 펼쳐질 것이, 실은 우리의 고통 그 자체일지라도. 여름밤은 짙고 푸르니 우린 이야기를 펼칠 거야. 펼쳐진 이야기는 이제 다시 주워담기 어려울 만큼 일렁이며 무대를 채운다. 그 여름 아이들의 밤을 채운다. 

더불어 아이들은 의미없이 나의 영혼을 구제해주십사 중얼거리던 기도가 아니라, 정말로 신의 부재를 갈망하게 되는 때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내 슬픔-어리고 나약하기에 이렇게밖에 외칠 수 없지만 실은 끝도 없는 절망-을 위로해줄 신을 간절하게 부르게 되는 그 마음에 대해서. 나를 꺾으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서 그럼에도 다시 무릎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간절한 소망에서부터 나오는 힘이다. 마침내 주변 모든 상황을 떨치고 일어나, 처한 상황에 비해서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가라앉기까지 자기 안의 소망을 들여다보는 학생2의 흐름을 좋아한다. 아멘. 그렇게밖에 내뱉을 수 없는 차가운 현실에서 소망을 부여잡는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나쁜 생각은 정말 재빠르게 절망한 사람의 머릿속으로 뛰어드는구나! 

이 대사를 듣는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니까 잘못된 선택, 혹은 극단적인 선택, 을 하는 사람의 컨디션을 단숨에 설명해주는 당연한 문장이랄까. 단호하고, 단 하나의 동앗줄을 잡아낸 듯한 반응으로 약장수에게 가자! 를 외치는 로미오의 반응과, 이를 연기하는 학생1을 좋아한다. 그래, 사람은 그렇게 단숨에도 마음을 먹는 존재인거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년 로미오는 사실 충동적이고 지나치리만치 행동력이 좋다. 티볼트를 죽인 빠르고 격렬한 결심도 그렇고, 줄리엣의 소식을 듣자마자 절망한 자신의 정신에 극약을 구하겠다는 생각이 뛰어들도록 하는 인간인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단숨에 치닫는 인간의 어떤 열정, 열망을 본다. 미숙함이라고만 단정하기에는 너무도 진심인, 그 순간 해낼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선택인 열망.
멋지네. 이성적 이성으로 이런 문장을 쓴다는 것이 참 멋져.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어린 아이의 절망을 지켜보는 척 하면서 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돼 로미오! 외치게 하는 안타까운 갈증을 유발할 만큼 로미오의 심경을 잘 담아내고있는 문장이라 정말 멋지다. 그 외침에서부터 극도로 무너져가는 해피엔딩의 가능성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묘한 희열인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나머지 세 학생들의 타들어가는 속내 역시. 다시 처음에 말했듯이 이것은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이야기. 사랑은 충분히 보았고, 이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다. 

학생1은 처음부터 어떤 아이였을까. 
내 사랑에게. 끄적이다 이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 소네트를 말하는 소년.
그것은 진짜 사랑한다고 생각한 어떤 아이에게 쓰는 편지였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날마다 처음을 여는 학생1의 노트 장면을 보며 다른 인상을 받는다. 그냥 세상 어디에나 널려진-수업 시간에도 나오는 동사인- 사랑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내가 사랑에 빠진다면 어떨까' 상상하게 된 평범한 아이였을 수도 있다. 그런 그에게 실제로 사랑이, 고난과 역경을 뚫고서 마침내 죽음에 이르기까지 감당하는 사랑이 닥치게 된 것일 수 있다. 이거 말야, 다른 무엇도 아닌 그냥 미치도록 뜨거운 열병인 것 같아. 하지만 난 이 열병이 낫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 막연히, 이 열병을 앓은 후 내가 알게 될 어떤 새로운 성취를, 성장을 바라보고 있는 메시지인 것이다. 그 감정에 혹은 문장에 사로잡혀, 나를 덮칠 폭풍을 기꺼이 바라는 치기 가득한 아이의 모습. 그 끝이, 지독하게 아픈 후유증일지라도. 




헛소리지. 이건 꿈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때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없는 어떤 공허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젯밤에, 난 꿈을 꿨어. 그리고 지금의 꿈은 어쩌면 단 하나의 진실이었을 현실이다. 꿈을 꾸었고, 이제 나는-실은 우리는-돌아갈 수 없어. 슬픔을 가득 담아 기쁘게 외치는 학생1은 분명 성장했고 앞으로 달려갈 것이다. 부서지고 고꾸라지더라도 최소한 맞부딪히며 나아갈 것이다. 아무리 슬픈 눈을 할지라도 아이들의 비극적 미래는 그리지 않게 된다. 어린 날의 폭풍은 겪음 자체로 이미 성장이라는 희망이다.  

볼수록 하나의 고전을 이렇게까지 변주하다니,하는 부러움이 컸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뿐이겠는가. 모든 원전에는 힘이 있다. 우리가 단순하고 진부하다고 느낄 만큼 반복해서 또 비틀어서 다양하게 만나본 그 원전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근원적인 에너지를 다시 한번 꺼내보는 것이다. 여기저기 많이 봐서 이제 별 가치를 느낄 수 없는, '운명을 거스르는 사랑'을 쉽게 말하지 마라. 진심을 다해 외치는 목소리를 가볍게 여기지 마라. 우리 중 누구라도 줄리엣과 로미오의 상황에 처해 있더라면, 사뭇 다르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결말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질 만큼 진실된 목소리가, 이 이야기에는 있다.




+ 알던 배우들을 새롭게 보게 되는 공연이었다. 처음 보고 말한 감상은 사실 '무대에서 축구를 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는데 전반 후반 연장전 달리고 그라운드에 쓰러지는 선수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당히 체력극이지만 이렇게 넓었어야 했을까? 싶은 느낌은 있다. 심장이 조마조마하게 위험하고도 보기엔 멋진 무대이긴 한데, 조금은 더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다면 비밀스러운 느낌이 더해졌을 것 같기도. 하지만 포기하기에 아까운 무대임엔 분명하다. 아무튼 그 무대에서 기를 쓰고 달리는 배우들을 보는 것은 죽달이나 마방진을 좋아하던 내게는 반가운 일이다. 

++ 일단 데뷔부터 갖고 태어난게 좋아보였던 영석배우가 마침내 자기 빛을 내는구나, 해서 기뻤고.. 이 세련되고 안정적인 톤을 유지할 수 없는 극들에서 소모되었던 게 다시금 아까웠다. 미처 생각지 못했을 만큼 너무나도 로미오인 정복배우도 새삼스러웠다. 기존에 내가 '로미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무척 흡사한 외모와 캐릭터 톤이어서 일단 그냥 보는데 어 너 로미오.. 였다(?) 무슨 눈알이 이렇게 로미오같이 반짝거리니.
 반면 섬세하고 어린 느낌이 강한 세중배우가 구래도 내가 로미오! 하고 씩씩하게 이야길 해내는 것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단순화하면 어쩐지 줄리엣에 공감할 것 같은 아이가, 그 상대인 로미오를 맡아 이중적 감정으로 한발한발 도전해보는 느낌이랄까. 진짜 유럽 기숙학교를 다니게 생긴, 유모의 재간과 티볼트의 과감함이 다 잘 어울리는 광일배우도 이 극에서 늘상 보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머큐쇼는.. 그런 친구였구나? 여태 잘 몰랐다(머쓱)

+++ 앞으로 여름이면 떠올릴 극이 하나 더 늘었다. 비오는 여름밤, 의 심상에 뜻밖의 고전 로맨스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다시 보게 만든 것은 결국 김경육의 승리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음악의 힘이 무척 컸다. 

++++ 처음 본 날 머릿속에서 여배우 캐스팅이 다 끝났는데, 언제쯤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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